갑작스러운 형 부부의 죽음. 흑백 무성 영화처럼 적막하고 지루하던 그의 삶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섯 살 여자아이의 총천연색 에너지가 굴러들어 왔다. 무서울 게 없던 백태준은 비로소 장렬하게 무너졌다. [이번 학기 끝날 때까지 로즈의 입주 가정 교사가 되어 줄 수 있겠습니까?] 로즈가 유독 잘 따르는 유치부 보조 선생님 ‘미스 미니’에게 태준이 제안했다. [약 4개월간 기본급은 10만 달러입니다. 계약서에 사인하는 즉시 5만 달러의 계약 보너스, 그리고 6월 말에 5만 달러의 성공 보너스를 약속합니다.] 그런데. ‘드디어 미쳐 버린 건가.’ 발갛게 달아오른 볼, 하얗다 못해 투명해 보이는 피부, 끈적이는 시럽을 입힌 체리 같은 입술, 무릎을 꿇은 허벅지 안쪽의 보라색 멍, 말랑거리던 손의 느낌, 이상하게 귀를 간지럽히며 속살거리던 목소리. 두서없이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에 예고도 없이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로즈의 선생님, ‘미스 미니’에게 발정하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