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하여 이리되었는가 묻지 마라. 눈을 떠보니 머리카락이 잘려 있었고, 그 덕에 세상 구경 한 번 해보고자 남장을 하였으며, 걷다 보니 주인양반을 모시는 몸종, 말복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차 하는 사이…… 이 풋내 나는 마음을 홀딱 빼앗기고 말았다. 종이품 대사헌 허문 대감의 귀한 여식 규원. 단명의 운을 타고난 탓에 바깥구경도 제대로 못해본 그녀가 열여덟 살 인생 반환점에서 맞이한 것은…… 주인양반이었다. 한데 이 언이라는 주인양반, 참으로 고약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그녀에게 너무도 위험하고 자극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내가 궁금하지 않느냐. 나 같으면 아주 많이 궁금할 듯한데.” “아닙니다. 저는, 저는 그저 도련님을 모시면 되는지라…….” “오호! 모신다? 어찌 모실 것인데?” “왜, 왜 이러십니까. 도련님, 저 말복이입니다.” “알지. 내 것인 말복이가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