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모죄를 뒤집어쓴 가문은 멸문하였고 이젠 어미마저 목숨을 잃었다. 홍연은 참극을 일으킨 장본인의 목을 쥐고 지옥으로 돌아가리라 다짐했다. 바로, 이 나라의 다음 지존인 태자 이흔의 목을. 새로운 신분을 얻고 소양을 닦으며 칼을 갈았다. 그리고 무수한 우연을 쌓아 필연으로 받아들이듯, 비파 열매 같은 여인으로 태자의 눈에 들었다. “넌 날 취하게 해.” 고통 속에서 말라 죽어 버릴 수 있도록 애가 닳고,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감정을 그로 하여금 깨닫게 할 생각이었다. 한데. 백성들 사이에서 무람없이 섞인 모습이, 스치듯 머물다 간 그의 입술이 홍연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어미의 한과 함께 나약하게 만드는 감정은 묻었다 생각했는데. 불행히도. “그대가 날 살렸어. 그대가.” 그를 연모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