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리네. 제목도 기억나지 않던 어느 로맨스 소설의 여주인공. 본래 배에서 내려 주인공으로서의 이야기를 그려 나가야 했을 아이. 그러나 내용을 비틀어 죽음을 피한 나와 달리 네리네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 사루비아. 같이 어른이 되자.” “뭐야? 만난 지 두 번 만에 프러포즈야?” 여주인공의 운명을 빼앗아 만난 약혼자 아르크투르스. 그와 함께 지내는 것이 익숙해졌을 무렵, 드디어 그토록 찾던 진짜 여주인공을 찾았지만. ‘보면 안 돼.’ 보게 해서는 안 된다. 만나게 해서는 안 된다. 그가 주인공과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아무리 내가 여주인공의 자리를 빼앗은 상황이라고 해도. 모든 게 정해진 설정대로 흘러간다면 절대로 네리네를 보게 해서는 안 된다. 빼앗기고 싶지 않다. 잃고 싶지 않다. 지금껏 정신 연령을 따지고, 어린애라 놀리고, 내가 먼저 하기 껄끄럽다고 생각하여 웃어넘긴 주제에 드디어 깨달아 버렸다. 빼앗기는 걸 참을 수 없을 만큼 강하게 원하고 소중하다는 걸. 그것이 사랑이다. 소설이 정한 설정이 아닌 나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