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의 저주를 받은 이들이 모여 산다는 여우 골. 여우 골의 약초꾼 연호는 어느 날 피투성이가 된 남자 윤을 발견한다. “왜 묻지를 않느냐?” “무엇을요?” “……내가 누구인지, 하다못해 어쩌다 이런 몸으로 쓰러져 있던 것인지.” 정체를 숨긴 대군과 저주받은 여우 일족의 여인. 헤어짐이 예정되어 있는 관계였으나 두 사람은 속절없이 서로에게 빠져들고. “과년한 아녀자의 마음을 뒤흔든 죄가 크시니, 값을 치르셔야겠습니다.” “무엇으로?” “나쁘진 않을 방법으로요.” 비가 내리던 날 인사도 없이 헤어진 두 사람은 2년 후 기적처럼 재회하지만. “행궁의 담벼락, 빗줄기 틈을 파고들던 낭자의 목소리. 나는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소.” “……저는 잊었습니다.” 잊어야만 했다. 그의 손에 비참하게 죽은 제 어미의 복수를 위해서. 한때 사랑으로 빛나던 연호의 두 눈은 윤을 향한 복수심으로 불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