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빙의했다. 아니, 내 모습 그대로 떨어졌다. 철저한 제3자로 주인공들의 옆에서 소설의 결말까지 함께 맞이했다. 그게 벌써 수백 년. 주인공들은 이미 죽은 지 오래였고, 자신은 괴물이 되어 여전히 살아 있다. 이 세계의 이방인으로 소설이 끝남과 동시에 내 시간의 흐름도 멈춰 버린 것이다. 그러다 겨우 실마리를 찾았다. 이 시간을 완전히 끊어 내 버릴 수 있는 실마리를. 그렇게 단서를 쫓아 황실의 시녀로 잠입했다. 그런데, 넌 혹시……?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아직도 작은지, 아닌지.” 일렁이는 뜨거운 모닥불 때문인지, 그의 황금색 눈동자가 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딱 봐도 큰데 대체 뭘 확인하라는 걸까. “……이름, 불러 줘요. 헤스티아.” 애처로우면서 진득한 눈빛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어서.” 원하는 답을 들은 후에야 그는 예쁘게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저희 함께 밤도 보낸 사이잖아요.” 아득한 춤을 추며 일렁이는 촛불처럼 그의 낮은 음성이 귀를 간질였다. 그의 모습에서 더는, 내가 주웠던 작은 소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