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을 운영하는 후작가의 영애로 평안한 나날을 보내던 알리오스 리엘. 어느 날 길을 가다 쓰러진 가련한 미남자를 구해 줬는데, “잠들기 전 나와 스친 건 그대인가?” “네, 그런데요?” “처음이야.” “예?” “스치는 것만으로 날 재우는 사람은. 그대가 처음이라고.” 남자의 마지막 문장을 듣는 순간, 전생의 기억이 되돌아왔다. 남자는 내가 읽었던 소설 속 여주와 남주를 통째로 파멸로 이끈 희대의 흑막, 카시아르 키센이었는데. 그건 내가 아니라 여주한테 해야 하는 말이잖아? 게다가 흑막을 재울 수 있는 건 여주만이 가졌던 능력이었다. 흑막은 원작의 여주에게 하듯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내가 대신 파멸 엔딩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주를 찾아나섰는데. 소설 속 여주가 죽었다. 내게 파멸로 가는 능력을 넘겨 주고서. *** 결국 흑막에게 붙잡혀 조건부 계약 결혼을 시작했는데, 내 능력만을 필요로 한다던 흑막의 행동이 수상쩍다. “이 정도로는 빨리 잠들기 어려울 것 같은데.” 카시아르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어느새 그는 내 손을 제 뺨에 댄 채로 날 나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닿아 있어도 잠이 오지 않으니까.” 잠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던 카시아르 입술이 내 손에 닿았다. 파멸 엔딩을 피하기 위해 달아나는 대리 여주, 리엘과 그럴수록 집착하는 계략 흑막, 키센의 밀고 당기는 달달한 로맨스판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