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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한번 맘껏 해 봐. 말도 없이 도망치고, 또 그렇게 사라지고 그렇게 실컷 한 다음에, 두 눈으로 똑똑히 봐. 결국 네가 나를…….” 예진은 입술을 꾹 짓씹고는 매몰차게 돌아섰다. 하지만 해준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랐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예진의 가녀린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차가운 낯으로 말했다. “……벗어날 수 있는지.” *** “넌 내 슬픔을 알잖아.” 하지만 해준은 꿋꿋이 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 네 비참함을 알고, 네 불쌍함을 알아. 다르지 않으니까.” “…….” “그래서 자꾸 신경이 쓰여.” 혼자 그 지독한 감정을 끌어안고, 울지도 못한 채 좌절하는 것을 알았다. 오갈 곳 없는, 어디에도 정을 붙일 수조차 없는 마음이 얼마나 외롭게 시들어 가는지 알았다. 저도 평생 그렇게 살아왔으므로. “동정하는 건 아니야. 넌 내가 동정을 할 만큼 약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건 이제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어.” 그래서, 난……. 그저……. 해준은 말끝을 조금 흐리는가 싶더니, 예진의 눈을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네 인생에서 다시 비가 내릴 때, 네가 찾는 게 나였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