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팔아. 네 불행, 네 불쌍함, 네 비참함.” 예진은 불쌍한 여자였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이든 팔고 싶었다. 설령 그것이 제 영혼일지라도. 그렇게 그녀가 가장 비참할 때, 가장 불쌍할 때, 한 남자가 나타나 손을 내밀었다. 시험 같은 제안과 함께. 그리고 재앙처럼, 그녀의 인생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 “넌 날 못 벗어나.” 박해준은 여전히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넌지시 내뱉는 말도, 또 저를 바라보는 눈빛까지도. “이미 끝난 사이에 이러지 말아요. 꼴 보기 싫으니까.” “누구 맘대로 끝이 나지?” 질문을 던지는 해준의 눈동자는 음험하기 짝이 없어, 예진은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끝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야.”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해준이 예진의 턱을 거머쥐었다. “어디 한번 맘껏 해 봐. 또 말도 없이 도망치고, 사라지고, 그렇게 네 맘대로 실컷.” 그러고는 비웃듯 말했다. “그런 다음, 두 눈으로 똑똑히 봐. 결국 네가 나를 벗어날 수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