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죄 잃어버린 그녀는 제 이름조차 모른다. 가명으로 일용직을 전전하며 겨우겨우 살아 내기를 몇 년. 우연한 기회로 LM그룹 저택의 입주 가정부로 일하게 되고 그곳에서 저택의 젊은 주인, 혜검을 만난다. “그 침대, 마음에 듭니까?” “쓰지 않는 방인 줄 알고…….” “마음에 드는 거면, 앞으로 매일 와 줬으면 좋겠는데.” 별채 깊숙한 곳에 자리한 침실. 묘한 안온함에 취해 잠든 그녀를 그는 벌하지 않았다. 오히려 뜻밖의 명령이 그녀를 휘감았다. “왜 가만히 있어. 계속 남의 침대에서 뒹굴려고? 나야 상관없긴 한데.” 그날부터 그녀의 마음속에 생심이 생긴다. 가져서는 안 될 욕심이. ‘심혜검을 좋아하는 사람.’ 이름도 없는 그녀의 첫 정의였다. * 연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는 10년째 제자리에 멈춰 서 있다. 모든 것은 끝났는데 그 혼자 아니라 한다. 그건 병을 넘어 장애적인 집착이고 광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저택에 그리운 은방울꽃 향기가 맴돌고 갈 곳 모르고 뱃속에 쌓여 온 욕구가 들끓기 시작한다. “……채정원.” 혜검은 연인과 똑같이 생긴 여자에게 비틀린 욕정을 쏟아 낸다. 그런데 여자를 안을수록 이상한 마음이 솟는다. 연인이 죽은 것을 제 눈으로 확인했는데, 그녀가 진짜 채정원 같다. 그녀를 뒤덮은 베일을 벗겨 내면, 무엇이 나타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