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구면인데. 나 기억 안 나요?” “네. 모르겠는데요.” “일단 같이 쓰고 가요. 우산 없잖아요.” 비 오는 날 편의점 앞, 제게 우산을 내밀며 웃는 초면의 남자. 사이비인 줄 알고 냅다 도망쳤는데 알고 보니 옆집인 데다 친구의 친한 후배였다. 첫인상이 좋지 못했던 만큼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넉살 좋게 다가와 매번 저녁까지 차려 주는 통에 어쩌다 보니 계속 식사를 함께 하게 되고. 어느새 주명은 남자, 지광에게 익숙해져 간다. 그러다 문득 주명은 가까이 마주한 지광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눈빛, 손짓, 몸짓 모두 마치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구는 게 아닌가. 의심은 어느덧 확신이 되고, 불쑥 치민 질문에 솔직히 고백한 지광은 더욱 서슴없이 다가오는데. “그런 말 하면 부끄럽지도 않냐.” “어쩔 수 없어요. 내가 형을 좋아하니까. 마음을 숨기고 싶진 않아요.” 이 순간마저 기가 막히게 잘생긴 최지광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형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