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이 지나치십니다.” 현도가 헛웃음을 쳤다. 조신한 우리 작은 마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는 듯이. 한편으로 미묘한 조소가 섞인 어조였다. 모시는 주인을 도발하는 듯한 건방진 작태에 설란은 철없던 시절처럼 암팡지게 대답했다. “어차피 썩어 문드러질 몸인데, 뭐가 대수겠니?” 설란의 고운 미간에 힘이 들어간 걸 본 현도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진담이란 말씀입니까? 증명하실 수는 있고요?” “정녕 내 말을 못 믿겠어? 오늘 밤, 달이 뜨고 나서 내가 몰래 물레방앗간에 숨어들어야 믿겠느냐?” 반쯤은 장난으로, 반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막상 말하고 보니 정말로 그리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당초 열녀비란 정절을 지킨 여인을 기리기 위해 세우는 비석이 아닌가. 정조를 버리면 시부모님의 계획이 물거품이 된다. 통쾌한 복수가 될 터였다. 그러나 우습고 한심한 발상임을 잘 알았다. 집요한 최진사는 나라님으로부터 열녀비를 받아낼 위인이니. 악을 쓰고 발악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옆에서 하, 하고 짧은 탄식이 터졌다. 무겁지만 열기가 느껴지는 한숨이었다. 어깨를 데우고 있던 커다란 손이 내려가 설란의 가는 허리를 움켜쥐었다. “어, 어? 현도야?” “밤까지 기다리실 필요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