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인 묘족 출신으로 자연스럽게 귀신을 보면서 자란 유협. 남족과 맺은 평화 조약 때문에 타국으로 파견 왔지만 남족 황제의 명에 이루어진 삼 황자와의 원치 않는 혼약으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몇 년 동안 발이 묶이게 된다. 고된 학대와 방치로 인해 슬슬 이번 인생은 날렸다고 생각할 때쯤 예상도 못 한 상대가 나타나는데……. 바로 어렸을 적 동생 삼고 싶다고 생각한 천화였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형수님인 유협을 바라보는 천화의 시선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 마루를 걸어오던 인물이 마침내 유협 앞에 섰다. 그러나 유협은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온몸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그 순간 긴 그림자가 유협의 위로 드리웠다. 부드럽고 따뜻한 손이 그의 턱에 닿았다. 유협은 그 온기에 저항하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속눈썹이 긴 갈색 눈이 유협을 보고 있었다. “숨 쉬어야지.” 그제야 유협은 자신이 숨을 멈추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서.” 유협은 그 손을 따라가 주인을 바라보았다. 목까지 오는 갈색 머리, 크고 깊은 눈동자. 하얀 피부에는 어렸을 때 인상이 뚜렷하게 묻어 있었다. 섬세하게 긴 목과 달라진 눈높이를 확인하고 있자니 지나간 세월이 느껴졌다. 천화는 누가 봐도 인정할 만큼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내로 자랐다. 몸을 숙이고 유협과 눈 마주치고 있는 천화에게서 온기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