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班家)의 여식이자 음전한 여인으로서 두 사내를 아는 것이 어찌 좋은 일이겠습니까. 제발 말씀을 거두어 주세요, 서방님.” 부인 성화영을 두고 밖으로 나돌며 향락을 즐기기 바쁜 한이찬은 그녀에게 음란한 제안을 한다. 제가 사 온 종과 제 앞에서 밤을 보내 아이를 가지라는. 더는 화영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조건을 붙였다. “날을 잡기 전 낮에 먼저 만나 보고 싶습니다. 서방님 없이 은밀하게요.” * * * 다음 날 아침 화영은 잡일을 하고 있는 한 사내, ‘해호’를 눈에 담는다. 어쩐지 그가 제 상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대제학 나리 댁에서 팔려 온 노비가 맞니?” “맞습니다, 마님.”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뛰었다. “난 닳고 닳은 그의 앞에서 미숙한 모습을 내보이며 아파하고 싶지 않고, 그의 명에 굴복하여 몸을 더럽힌 듯 보이고 싶지도 않구나. 해 줄, 거지?” “연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원하시는 대로 써 주십시오, 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