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 나의 곁입니다. 황후.” 눈을 떴을 때, 후작가의 장녀였던 사샤는 제국의 황후가 되어 있었다. 지난 몇 년간의 기억은 모조리 잃어버린 채였다. ‘내가 뭐가 그리 좋을까? 그에 대해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서운하지도 않은가?’ 그녀에게 황궁은 별안간 뚝 떨어진 별세계.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로 같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곁에는 모두가 다정한 반려라고 말하는 황제, 데미안이 있었으니. 그런데 짜 맞춰진 듯한 완벽한 결혼 생활에서, 이유 모를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기억이 돌아온 건 아니었다. 뭔가를 알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폐하께 있어 제가 황후가 아니었던 적이 있나요?” “처음 본 순간부터, 그대는 한순간도 나의 반려가 아니었던 적이 없습니다.” 사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이것만은 알 수 있었다. ……모든 게 새빨간 거짓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