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만 파고들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여자 인주와 자신의 황폐해진 내면을 가리고 숨기며 주변의 기대에 맞춰 살아오던 상협이 다른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었음에도 서로를 알아보았다. “왜 저하고 뭘 하고 싶으셨어요? 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왜 전무님한테는 발작을 안하는지, 왜 다짜고짜 끌어안아도 거부감이 안 들었었는지, 왜 훈이를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지 저도 저를 잘 모르겠어요.” “당신의 향기가 나를 깨웠어. 만들어준 삶이 아니라 내가 만든 삶을 살고 싶어졌어. 마주보고 웃고, 함께 자고 깨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고, 같이 늙어가면서 서로를 아끼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졌어. 예전엔 성주를 벗어난대도 내겐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냥 포기가 됐었는데 지금은 당신이 있으니까.” 함께하기 시작하면서 지나온 삶이 얼마나 구겨지고 비뚤어 졌었는지를 비로소 깨달았다.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다. “상협 씨는 행복해지고 싶다고 했어요. 만들어진 삶을 더는 살고 싶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믿어 달라고 해서 믿기로 했습니다.” “저는 분명 경고해드렸습니다. 제 식구, 제 세상을 건드리시면 참지 않겠다고요. 어머니께서 저 분재들처럼 이리 휘고, 저리 꼬아서 만들어낸 결과물인 저를 남김없이 파괴해 드리겠다고요.” 이제는 목숨같이 소중한 그들의 세계를 온 힘을 다해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들의 변화는 주변까지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