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오늘이 첫날이었다. 번역가로 참여한 연극 공연을 위해 남쪽 동네, 소슬로 내려온 첫날. 이곳에서 시작한 가여운 내 첫사랑을 온전히 지워 없애 버리기로 결심한 첫날. “김준휘 대표님. 적어도 우리 직장에서 공과 사는 구분하고 삽시다.” “아, 우리는 이상한 사이지. 그것도 존나 이상한 사이.” 용기 내어 선전 포고도 했지만, 김준휘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급기야 우리는 열아홉 옛 기억에 취해 키스까지 하게 되는데. 정작 김준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뭐? 실수? 그냥 잊어버려? “지금 간 보는 거지? 내가 너 좋아한다고 하니까 쉬워 보여서.” “쉽다고 말한 적 없어. 쉬워 보인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남은 미련을 떨쳐 버릴 수만 있다면 이런 방법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특별히 크게 실수할 기회를 주는 거잖아, 김준휘 너한테.” 좋아했던, 아니 좋아하는 남자 품에 안겨서 좋았던 기억도 비워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확실히 해. 배이경 네가 허락한 거야.” 김준휘는 엄지로 내 입술을 뭉개듯이 닦아 내고는 그대로 날 매트리스 위로 쓰러뜨렸다. “그러게 그것부터 확인했어야지. 어디까지가 실수의 범위인지.” 아, 뭔가 잘못됐다. 우리는 이제 정말이지, 존나 이상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